대산(大山) 신용호 선생을 알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은 역사에 관심 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많이 없을 것입니다. 나 역시 블로그를 만들면서 신용호 선생의 존함을 처음으로 들었고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계셨구나' '이 분은 재조명되어야 마땅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교보생명이나 교보문고는 들어 아실 것입니다. 종로에서 만날 수 있는 지식 충전소 교보문고가 "교육이 민족의 미래다"라고 언급하시면 국민 교육에 인생을 바친 대산 신용호 선생이 우리에게 준 선물입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 중심가 종로 1가 1번지 땅에 교보문고를 열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 써 신용호 선생이 우리 사회에 준 영향을 과연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선생의 깊은 뜻을 헤아려 봅니다.
1. 대산(大山) 신용호 선생의 어린 시절과 독립운동가 가족
대산은 1917년 8월 전남 광주 금동에서 한학자이자 애국지사인 신성언 선생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후 전남 영암의 솔안마을에서 잠시 거주하다 목포로 이주해야만 했습니다. 대산의 큰형 신용국 선생이 영암의 항일농민운동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투옥되었고, 셋째 형도 일본 동경에서 항일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투옥된 전력이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항일가족이었기에 일제에 낙인찍혀 탄압과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소년 신용호는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을 몸소 체험했고 일본제국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폐결핵으로 투병생활을 한 탓에 정규학교로의 진학은 포기했지만, 17세에 독학을 결심했습니다. '천일독서' 계획을 세워 3년 동안 닥치는 대로 책들을 읽어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나갔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카네기가 세계 제일의 철강왕이 된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장애를 극복하고 이겨낸 강인한 도전 정신의 헬렌 켈러를 존경했습니다.
2. 다롄에서의 신용호 선생과 애국지사 이육사
1936년 20세가 된 신용호는 카네기처럼 큰 사업가가 되겠다며 중국 다롄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애국지사이며 친척 어른인 신갑범의 소개로 이육사 등 많은 애국지사들과 교류하며 투철한 민족관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육사에게 감명을 받아 그의 꿈이 민족자본가로 바뀌었는데 “아무쪼록 큰 사업가가 되어 굶주린 동포들을 구제하는 민족기업가가 되길 바라네”라고 격려했다고 합니다.
1940년 신용호는 중국 베이징에서 ‘북일공사’를 설립해 자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곡물유통회사인 북일공사의 수익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수시로 비밀리에 지원했고, 유통망을 개척하기 위해 트럭을 전세 내어 중국 산지를 억척스럽게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북일공사 사업도 크게 키워냈고, 중국의 북경대학 등에 합격했지만 만학도의 꿈을 접고 만 30세이던 1946년에 해방된 조국에 10년 만에 귀국했습니다. 귀국 후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으며 이런 조국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3. 세계 최초 교육보험 창안 및 진학보험
신용호 선생은 좋은 책을 통해 동포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다짐으로 출판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0년간의 사업경험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 대부분 가난한 사람이 많아 외상 한 채 책대금 회수가 어려워 사업을 포기하고 맙니다. 그 이후 본인은 배우지 못한 설움에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그 당시 집안의 큰 재산목록이었던 소까지 팔아 교육비를 마련하는 한국사람들을 보며 교육에서 해답을 찾습니다.
청년 신용호는 우리나라에 여전히 존재하는 전통적인 목돈 마련 방법인 '계'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중에 비슷한 상품도 보험도 전무했던 한국시장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먼저 선진국의 보험산업을 철저히 공부하고 연구하며 교육보험을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 당시 일제치하 강제로 든 보험이 휴지조각이 된 경험을 한 적 있어 보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팽배한 상황이어서 투자자 유치도 힘들었고 회사설립 인가조차 실패했지만, 불굴의 청년 신용호는 만나주지 않던 재무부 장관을 무려 반년 동안이나 자택 앞에서 끈질기게 기다린 끝에 결국 설득에 성공했습니다. 정부는 제4조 보험업 법을 들어 회사상호에 생명보험을 쓰지 않을 경우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상호에 교육보험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1958년 국민교육진흥과 국가인재양성을 목표로 생명보험의 이론에 교육을 접목한 ‘교육보험’을 창안하고, 마침내 그해 7월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때 정해진 가입대상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였던 ‘진학보험’에 대한 인가도 취득했습니다. 진학보험은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면 16.7% 지급하고, 대학 재학 중에는 매 학기 11.9%씩 7회마다 학자보조금으로 지급하도록 한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 상품입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 어느 보험사에도 없는 독창적인 상품이었고 당시 신용호 선생의 예상대로 높은 학구열과 맞물려 획기적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4. 대산 신용호 선생의 패기의 영업정신과 보험의 노벨상 수상
그때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는 최빈국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었으며 대부분의 서민들은 보험에 가입할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20대 이상 성인 남성의 80%가 흡연자들이었습니다. 신용호 사장은 패기의 영업정신으로 무작정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담배 한 갑 살 돈만 아껴도 담배 끊은 그 돈으로 교육보험에 가입해서 당신의 자녀를 대학에 보내 공부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습니다. 신용호 사장이 직접 발로 뛰어 나선 영업에서 가장 많은 계약을 성사시켰고 1967년 계약보유만 400억을 넘기며 창립 9년 만에 보험업계 정상자리에 등극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난으로 힘들어하는 부모들의 자녀학비를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렇게 교육을 받은 자녀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중요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산 신용호 선생은 1996년 한국 기업인 최초로 경제발전과 보험업계에 이바지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또한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출시해 세계에 전파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험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세계보험대상’ 월계관상을 수상하며 ‘세계보험 명예의 전당에 당당히 올라 전 세계 보험인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5. 교보의 의미
교보는 보험회사라고만 알고 있고 줄임말인 줄은 몰랐는데, 교보는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의 교육보험을 줄여서 '교보'라고 일컷고, 1995년에 교보생명보험으로 사명을 바꿔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6. 국민교육진흥 구현 교보문고 설립 및 ‘국민책방’ 교보문고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작가나 대학교수, 사업가,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도 탄다면
그 이상 나라를 위하는 일이 어디 있으며, 얼마나 보람 있는 사업입니까!’ -대산 신용호선생-
교보문고 창립 당시, 그 당시 대한민국 최고로 비싼 땅인 서울 광화문 종로 1가 1번지에 돈 안 되는 서점을 열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모두 크게 반대하였고 무산될 수도 있었지만 대산은 국민교육진흥의 구현에 대한 본인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981년 6월에 광화문 본사 지하 1층에 면적 678평, 장서보유량 60만 권 등 단일층 면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교보문고를 설립하여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교보문고는 오픈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지식쉼터가 됐으며 연간 방문객 5000만 명이 찾는 ‘국민책방’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교보문고 입구의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글귀는 대산 신용호선생의 이념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300석 규모의 좌석을 배치해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로 리뉴얼한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크게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교보문고에는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5대 운영지침이 있습니다.
첫째, 한 곳에 오래 서서 책을 읽어도 그냥 내버려 둘 것
둘째, 책을 노트에 베끼더라도 그냥 내버려 둘 것
셋째,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한테도 경어를 쓸 것
넷째, 책을 훔쳐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망신 주지 말고 사람 없는 곳에서 좋은 말로 타이를 것
다섯째, 책을 이것저것 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면박 주지 말 것
대산은 실제로 매일 교보문고 매장을 돌아보며 직원들에게 위의 5대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고 합니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보다도 청소년들이 독서를 통해 큰 그릇이 되고 참된 인재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라고 합니다.
7. 창조적 기업가 신용호선생
경제학자 슘페터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발달은 기업의 혁신에 의해서 이뤄지며 이러한 혁신을 추구하는 추진자가 창조적 기업가라고 합니다. 대산 신용호선생은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여러 새로운 보험상품을 개발하였습니다. 그는 애국심과 개척정신 그리고 불굴의 집념으로 교보생명을 키워 냈고, 기업의 이익을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고 실천했습니다. 이처럼 대산 신용호선생은 대한민국 경제를 일궈 낸 창조적 기업가이자 세계 보험산업의 귀감이 되어 국가와 민족을 사랑한 참된 스승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저 브랜드에 이런 스토리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놀라 시리얼 전쟁/ 그래뉼라 vs 그래놀라/ 켈로그 vs 포스트/ 콘 플레이크 (1) | 2024.07.11 |
---|---|
유니클로의 의미 및 역사/ 유니클로의 롤모델 및 성공 비결/ 유니클로 후리스 및 히트텍 (0) | 2024.07.04 |
뉴발란스 이름/ 창립 및 아치 서포트/ 러닝 스파이크/ 트랙스터/ N990모델 /뉴발란스 인기 시리즈 (0) | 2024.07.02 |
아디다스의 의미 및 로고/ 다슬러형제/ 아디다스와 올림픽 및 월드컵/ 아디다스 '아딜렛'과 '슈퍼스타'/ 아디다스의 가족경영 (1) | 2024.06.30 |
활명수의 의미와 탄생 그리고 독립운동/ 동화약방 그리고 '부채표'/ 민족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 보당 윤창식선생/ 동화제약 '가스활명수' 기네스북 (1) | 2024.06.20 |